이상한 동굴 속 사람들 이야기
“엄마, 이거 진짜야? 왜 그림자가 말을 해?”
초등학교 4학년 수빈이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물었어요.
그 모습이 마치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를 처음 듣던 내 모습 같아서 웃음이 나왔죠.
“수빈아, 진짜가 뭘까?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게 전부일까?”
“응? 무슨 말이야?”
“옛날에 플라톤이라는 철학자가 있었어. 아주 오래 전, 그리스라는 나라에서 살았던 사람이야.
이 사람이 재미있는 상상을 했단다. 만약 사람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어두운 동굴 안에서만 살았다고 해보자.
그 사람들은 팔다리가 묶여 있어서 앞만 볼 수 있어.
그리고 뒤에는 큰 불이 타고 있고, 그 불 앞에서 누군가가 여러 가지 물건을 들고 다녀.
그러면 그 사람들은 앞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게 되지.”

수빈이 눈이 동그래졌어요.
“헐… 그러면 사람들은 진짜 물건은 못 보고 그림자만 보는 거야?”
“맞아.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사람들은 그림자만 보고 자라서, 그게 진짜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만약 그중 한 사람이 묶인 줄이 풀려서 밖으로 나간다고 상상해보자.
밖은 햇빛이 비치고, 진짜 나무와 동물이 있고, 새도 날아다녀. 그러면 그 사람은 깜짝 놀라겠지?”
“응! 엄청 신기할 거 같아. 그런데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도 그림자만 보고 있는 거네?”
“그렇지. 그 사람은 ‘아, 내가 그동안 본 그림자는 진짜가 아니었구나!’ 하고 알게 되지.
그런데 다시 동굴로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말해주면 어떻게 될까?”
“음… ‘말도 안 돼! 그림자가 진짜지!’ 하고 안 믿을 것 같아.”
“그래, 플라톤도 그렇게 말했어. 사람들은 자기가 늘 보던 것만 믿으려고 해.
그래서 새로운 진실이 와도 거부하거나 무서워하지. 이게 바로 ‘동굴의 비유’야.”
수빈이는 이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생각했어요.
“그럼 나는 지금 진짜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림자일까?”
우리가 보는 세상, 진짜일까?
“엄마, 나도 혹시 동굴 속에 사는 거 아닐까?”
수빈이의 질문에 잠깐 멈칫했어요. 사실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해봤을 질문이거든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예를 들어볼게. 수빈이는 하늘이 파랗다고 생각하지?”
“응! 맑은 날 보면 항상 파래.”
“그런데 어떤 곤충들은 우리랑 다른 색으로 하늘을 본대.
또, 고양이들은 밤에도 잘 보이지만 우리는 어둡잖아? 만약 고양이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른 걸 보게 되지.”
“우와! 고양이 눈으로 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게 진짜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것뿐인지는 잘 모르겠어.
플라톤은 ‘진짜 진실’은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이성’으로 생각하고 깨닫는 거라고 했어.”
“이성? 그게 뭐야?”
“이성은 머리로 생각하는 힘이야. 눈으로 보이는 걸 그대로 믿지 않고, ‘왜 그런 걸까?’ 하고 따져보는 거야.
동굴 속 사람도 밖으로 나가 진짜 세상을 보려면 용기가 필요했잖아.
그 사람처럼 우리도 그냥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생각을 해봐야 해. ‘진짜일까?’, ‘이건 왜 이럴까?’ 하고 말이야.”
수빈이는 갑자기 방 안을 둘러봤어요.
“그럼 이 책상도 진짜가 아닐 수 있어?”
“그럴 수도 있지. 플라톤은 진짜 책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완벽한 책상’의 모습에 가까울 거라고 했어.
이건 그 모습의 그림자 같은 거지.”
“그럼 꿈도 진짜가 아닐까?”
“재미있는 질문이야! 꿈에서도 우리는 보고, 느끼고, 무섭기도 하잖아.
꿈이 끝나면 ‘아, 꿈이었네’ 하고 알게 되지만, 그 안에서는 진짜 같아.
플라톤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어쩌면 꿈처럼, ‘진짜 세상’의 모양일 뿐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럼 진짜 세상은 어디 있어?”
“플라톤은 진짜 세상은 눈으로 보는 곳이 아니라, 생각하고 깨달음으로 다가가는 세계라고 했단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생각’하고 ‘의심’하고 ‘궁금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
진짜를 찾는 용기
“근데 엄마, 동굴 밖으로 나가는 건 너무 무서울 것 같아.”
수빈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맞아, 처음엔 눈이 너무 부셔서 아무것도 안 보일 수도 있지. 그리고 익숙한 그림자들이 더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
플라톤도 이걸 알았어. 그래서 진짜를 찾아 나서는 건 ‘용기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다고 했어.”
“근데 왜 꼭 나가야 해?”
“좋은 질문이야. 나가지 않아도 살 수는 있어. 하지만 진짜 세상을 보면 더 많은 걸 느끼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말이야. 책 안에는 우리가 겪지 못한 많은 세상이 들어 있어.
그걸 알면 우리 마음도 더 자라고, 생각도 깊어지지.”
“그럼 진짜를 알면 더 똑똑해져?”
“음… 단지 똑똑해진다는 것보다는,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도 생기고.
예를 들어, 누군가가 무섭고 이상한 말을 해도 ‘아, 저 사람은 아직 동굴 속에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수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그럼 나도 나중에 동굴 밖으로 나가야겠다. 그런데 혼자 나가는 건 너무 무서울 것 같아.”
“그래서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거야. 누군가와 같이 생각하고, 서로 물어보는 게 동굴에서 나오는 첫 걸음이야.
너처럼 ‘이게 진짜일까?’ 하고 물어보는 게 바로 그 시작이지.”
“오! 그럼 나 철학자 되는 거야?”
“맞아.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바로 철학자야.”
수빈이는 빙긋 웃으며 말했어요.
“그럼 나는 지금 철학자 수빈입니다~!”
이 글은 수빈이라는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자연스럽고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어요.
철학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가 매일 하는 질문들—“진짜일까?”, “왜 이럴까?”—속에 그 씨앗이 들어 있어요.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그 동굴 밖으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