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세탁소를 접고, 다시 시작한 공부와 집에 대한 결심
멈춘 시간 속, 마음은 움직이고 있었다
세탁소를 접고 나니 삶이 조용해졌습니다.
정해진 출근도 없고, 접수도 없고, 고객의 컴플레인도 없고, 알바생의 실수도 없던 나날들.
처음엔 그저 쉬고 싶었습니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마음 한쪽이 서서히 공허함으로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 막연한 불안함.
그리고 그 불안함 속에서 저는 ‘아기’를 떠올렸습니다.
닮은 아기를 갖고 싶었어요
남편을 닮은 아기를 갖고 싶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똑 닮은 얼굴이 옆에서 자고 있는 모습, 그걸 상상하면 마음이 따뜻해졌죠.
그렇게 우리는 임신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변화가 없자, 결국 난임 클리닉을 찾게 되었어요.
병원 대기실에서 대기하면서 저는 종종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간절했어요. 그래서 다시 시도하고, 또 기다리는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병원과 집 사이,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병원을 다니는 중에도 저는 멈춰 있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집중해야만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때 떠오른 게 부동산 공부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전세를 살고 있었고, 한 번 세탁소를 운영하며 상가 임대 계약을 해봤고,
남편은 늘 부동산 시세를 체크하고 있었죠.
“이참에 나도 한번 제대로 공부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부동산 학원, 그리고 임장이라는 세계
처음엔 용기를 내어 부동산 전문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같은 반에는 부동산 중개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갭투자를 연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저처럼 단순히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죠.
매일 강의 들으며 필기하고, 핫플레이스 임장도 따라 다녔습니다.
그 때 이태원 경리단길, 황리단길 이런 곳에 어떤 건물이 얼마에 팔렸고 리모델링해서 현재 시세는 얼마인지 같은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동산이라는 세계가 점점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도와 숫자, 수요와 공급, 교통과 상권. 모든 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공인중개사 시험, 그리고 작은 성취
학원을 다니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용어도 생소했고 법률 지문은 읽기만 해도 숨이 막혔죠.
하지만 ‘어차피 해보는 거,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실제 공부는 3개월 남짓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결과는 아쉽게도… 1차는 합격, 2차는 평균 5점 차이로 불합격.
조금 아쉬웠지만, 공부한 시간이 짧았기에 1차 붙은 것만으로도 뿌듯했습니다.
“내가 이만큼 해냈구나. 다음 해엔 2차만 보면 되겠네.”
시험은 떨어졌지만, 부동산 전반에 대한 이해도와 자신감은 크게 높아졌어요.
세금, 계약, 임대차보호법,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등…
이전엔 막연했던 개념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씩 정리되어 갔습니다.
이제는 집을 사야겠다는 결심
그렇게 공부하던 어느 날, 전세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전세도 나쁘지 않아’ 하며 살았지만, 이번엔 마음이 달랐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전세라는 구조가 어떤 의미인지,
전세보증금이 다른 사람에겐 어떻게 활용되는지 더 잘 알게 되었죠.
그때 친구가 대화 중 무심코 말했습니다.
“나? 은행에 돈 빌려서 샀지. 어차피 집값은 계속 오르니까.”
그 한 마디가 이상하게 가슴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 돈 빌리는 게 무섭기만 한 건 아니구나.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살 수 있을까?’
그동안 남편의 관심만 옆에서 바라보던 제가,
처음으로 “우리도 집을 사자”는 결심을 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 다시 나를 세우던 시간
이 시기는 외적으로는 조용했지만, 내적으로는 가장 바쁘고 의미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기를 기다리며 병원을 오가고, 공부를 시작하고, 시험에 도전하고,
결국엔 스스로 집을 사고 싶다는 결심까지 하게 된 시간.
회사를 그만두고, 세탁소도 접고, 한동안 아무 역할도 없는 사람 같았지만,
사실은 그 시간들이 내 인생의 방향을 다시 잡아주는 시기였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삶이 멈춘 듯한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방향을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