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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전세가 더 나은 선택이라 믿었던 시절 – 신혼의 첫 아파트 살이

by 엘바바 2025. 5. 17.

3편. 전세가 더 나은 선택이라 믿었던 시절 – 신혼의 첫 아파트 살이

전세가 더 나은 선택이라 믿었던 시절 – 신혼의 첫 아파트 살이
전세가 더 나은 선택이라 믿었던 시절 – 신혼의 첫 아파트 살이

 

계약은 해지되고, 다시 전세로

결혼을 앞두고 무모하게 계약했던 신혼집은 결국 입주하지 못한 채 계약 해지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준공은 예상보다 늦어졌고, 공사 일정은 계속 미뤄졌으며, 우리는 이미 신혼을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다행히 계약금은 전액 돌려받을 수 있었고, 다시 한번 현실적인 주거 계획을 세워야 했죠.
그 시점의 분위기는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지금 집 사는 건 바보다.", "재산세 내면서 뭐 하러 집을 사냐."
이런 말이 심심찮게 들리던 시기였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전세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대단지 새 아파트 전세, 우리 눈에 비친 ‘성공적인 선택’

그때쯤, 회사와 가까운 곳에 2000세대가 넘는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가 입주를 앞두고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단지 규모도 컸고, 커뮤니티 시설도 훌륭했죠. 입주민 전용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게스트룸, 탁 트인 조경과 도로.
분양 당시보다 시세는 내려와 있었고, 전세가는 더더욱 저렴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을 선택했고, 신혼의 시작을 알리는 진짜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34평 아파트에 맞춰 새로 가전을 들이고, 가구를 맞추고, 살림을 하나하나 채워가며 새로운 공간을 채워갔습니다.

원룸에서 남편과 함께 살던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쾌적하고 넓은 집이었고, 마치 드라마 속 공간에서 살게 된 것 같은 감정마저 들었습니다.


“이렇게 전세만 다니면 되지 않을까?” – 그때의 순진한 계산

처음엔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런 좋은 집에 저렴하게 전세로 살 수 있다면, 굳이 집을 살 필요가 있을까?’
‘세금도 없고, 매매가보다 저렴하게 누리는 삶. 이게 가성비 최고 아냐?’

우리는 ‘앞으로도 입주하는 새 아파트를 찾아 전세로 이사 다니며 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매년 신축 아파트가 입주하는 지역을 체크해서 좋은 단지를 고르고, 깔끔한 집만 골라서 사는 삶.
그게 정말 좋은 선택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그 생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세 만기가 다가오면서 저는 계약을 연장할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집도 마음에 들고, 이사 스트레스도 없고, 익숙한 동네에 더 정 붙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조금 달랐습니다.
컴퓨터 모니터엔 늘 네이버 부동산과 지도가 떠 있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아파트 시세를 들여다보고 있었죠.

어느 날 저를 불러 말했습니다.
“이 아파트는 몇 달 전에 3억이었는데 지금은 3억 3천이래. 옆 단지는 2억 8천에서 3억 2천으로 올랐고…”
남편은 시세 흐름을 정리하듯 말했고, 그걸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를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이 사람,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을 갖고 싶은가 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슬슬 ‘우리도 집을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무렵, 우리는 퇴근 후와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도서관에서 부동산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습니다.


책과 대화 속에서 움튼 ‘자산’에 대한 생각

그때 우리가 몰입해서 읽었던 책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갭투자로 집 사는 법’, ‘작은 돈으로 시작하는 부동산 투자’, ‘월급쟁이 재테크 생존기’ 같은 책들이었죠.
남편은 예전부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고 돈에 대해 고민해왔던 사람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그 책을 읽고 자산과 부채의 개념, 레버리지의 힘을 기억해왔다고 해요.
그 책은 지금도 집 책장에 꽂혀 있고, 그는 종종 그 안의 문장을 인용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 남편은 저에게 본격적으로 갭투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면, 자기자본은 적게 들어가도 시세 차익은 온전히 우리 몫이야.”
“세입자가 살고 있으니까 우린 대출도 덜 받고, 잔금도 전세보증금으로 해결하면 되지.”

그 말이 처음에는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전세보증금도 결국 돌려줘야 하는 빚인데, 이게 어떻게 수익이지?’
‘내가 살지도 못하는 집을 사서, 남이 살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전세로 사는 사람인데, 누군가는 같은 구조로 자산을 만들고 있다는 현실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남편은 열정적으로 설명했지만, 저는 수익률 계산도 이해되지 않았고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어요.


‘갖고 싶은 마음’이 먼저, 이해는 나중에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는 공간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마음속의 아쉬움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마음껏 벽지를 바꿀 수도 없고, 구조를 손볼 수도 없고, 무엇보다 만기가 되면 언제든 짐을 싸야 하는 삶이었습니다.

책으로 읽는 수익률 계산은 어려웠지만, 감정적으로는 ‘우리도 한 번쯤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조금씩 움텄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매일 시세를 체크했고, 저는 그의 손에 들린 지도와 계산기 너머로 ‘자산’이라는 개념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 투자 이전의 ‘생각 변화기’

우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투자자라기보단 전세살이에 만족하던 소비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머릿속에 작은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내가 낸 전세보증금이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고 있다면,
우리는 왜 여전히 이 집의 주인이 아닌 걸까?”

그 질문은 작았지만,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다녔고 결국 우리 가족의 첫 진짜 부동산 투자로 이어지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선택은 이해보다 먼저 온다.
이해는, 때로 마음이 움직일 때 비로소 따라온다.